일을 하는 존재는 그 수고의 대가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눈앞의 작은 이득 때문에 함께 일하는 이의 입을 막아버리곤 합니다. 신명기 25장은 재판과 태형의 규정부터 시작해, 아주 사소해 보이는 소 한 마리의 이야기까지 다루며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넘지 말아야 할 선, 태형 40대 규정
신명기 25장 1절부터 3절은 재판장이 죄인에게 태형을 내릴 때 40대를 넘기지 못하도록 규정합니다.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40대 이상의 매를 맞으면 생명이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자리에 선 사람이 교만해져 정도를 넘어서지 않도록 분명한 한계를 그어 놓으셨습니다.
유대인의 구전 전승인 미쉬나를 보면 실제로는 39대만 구형하도록 했고, 매질은 신체 세 부위에 균등하게 나누어 시행했습니다. 집행 전에는 재판관과 의사가 죄수의 건강 상태를 진찰해 견딜 수 있는 매의 수를 정했습니다.
형 집행 중 죄수가 기절하면 즉시 중단하고 석방했습니다. 그렇게 형을 마친 사람은 죗값을 온전히 치른 것으로 간주되어 누구도 그를 조롱할 수 없었습니다. 그 근거가 되는 말씀이 바로 “내 형제를 경히 여기지 못할지니라”(신 25:3)입니다.
매질에 사용된 채찍은 소가죽과 나귀가죽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이사야 1장 3절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이라는 말씀에 근거합니다. 짐승도 주인을 알아보니, 매를 맞으며 정신 차리고 하나님을 깨달으라는 뜻이 담긴 것입니다.
당신은 함께 일하는 존재를 도구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이어지는 4절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고대 근동에서는 소가 타작 마당의 곡식단을 밟아 알곡을 골라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가 발밑의 볏짚과 낟알을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아까워 소의 입에 망을 씌우곤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금하십니다. 함께 땀 흘려 일한 짐승에게 최소한의 몫조차 허락하지 않는 그 인색함이 죄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동물 복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이 자기 이득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은 자신과 관계없다고 여기는 모든 존재를 도구화합니다. 설교 중 나눈 예화처럼, 동물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다루거나 사람을 인격이 아닌 노동력으로만 취급했던 사건들은 그 도구화가 얼마나 잔인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놀라운 것은 그런 가해자들 중에는 자기 집 반려동물은 극진히 아끼면서 정작 함께 일하는 사람은 학대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가 결국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결정짓습니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드러난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되어 왔습니다. 곡식 떠는 소의 입장까지 헤아릴 줄 아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함께 일하는 사역자를 존중하는 교회의 문화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이 말씀을 다시 꺼냅니다.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고전 9:9-10). 당시 고린도 교회 일부 교인들은 바울이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사도라면 청빈하게 아무것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성전의 일을 하는 자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목회자에게 청빈을 요구하며 사례를 인색하게 대하는 풍토가 은근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레위인을 봉양하지 않아 결국 레위인들이 자기 직분을 버리고 떠났고, 그 결과 말씀을 가르칠 자가 사라져 백성이 우상숭배와 혼란에 빠졌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교회를 위하고 교회는 목회자를 위하는 아름다운 문화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일상을 살피시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넘치는 은혜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십시오. 눈앞의 작은 이득만 생각하며 함께 수고하는 이의 몫을 빼앗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내가 얼마나 더 모으느냐보다, 나와 함께하는 생명 가진 존재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누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사랑의 정신입니다.
우리의 사소한 일상까지 지켜보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 사랑을 실천할 때, 몇 알의 곡식이 아니라 넘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다음 주일 예배에서 함께 그 은혜를 나누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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