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가 있다면, 그는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요?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에게 뜻밖의 제도를 준비시키십니다. 바로 ‘도피성’입니다. 오늘 신명기 19장을 통해, 이 제도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 미리 준비된 도피성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 동쪽 땅을 이미 정복하고, 이제 서쪽 가나안 땅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 모세를 통해 도피성 제도를 미리 가르치십니다. 땅을 얻게 되면 그 가운데 세 성읍을 구별하여 도피성으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미 동쪽에는 도피성 세 곳이 세워져 있었으니, 서쪽에 세 곳이 더해지면 이스라엘 전체에 여섯 곳의 도피성이 균형 있게 자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실제로 안전하게 피할 수 있도록 도피성까지 이어지는 길을 정비하라고까지 명하십니다.
이는 실수로 죄를 범한 이에게까지 살 길을 섬세하게 마련해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결과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도피성은 아무나 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일어난 살인이어야만 그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나무를 베다가 도끼머리가 빠져 날아가 옆 사람이 죽는 경우처럼, 죽이려는 마음도 계획도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이 죽은 경우가 바로 그 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을 봅니다. 사람은 결과만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그 일의 과정과 동기,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도피성에 이른 사람은 성읍 문 어귀에서 장로들에게 자기 사건을 소상히 말해야 했고, 고의가 아님이 확인되어야 비로소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공의와 긍휼, 두 가지 속성
도피성 제도에는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죄와 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다른 하나는 실수로 죄를 범한 사람에게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실수가 아니라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기다리다가 고의로 죽인 경우라면 도피성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성읍의 장로들은 그를 잡아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하며, 하나님은 “내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라”고까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고의로 행한 악을 눈감아 준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죄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
신명기 19장은 결국 한 분을 바라보게 합니다. 실수 많고 연약하고 죄 많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피할 때, 우리의 생명은 보존되고 우리는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시고, 우리를 품어 주시는 참된 도피성이십니다.
넘어졌을 때, 죄를 지었을 때, 마음이 낙심하여 무너질 때, 사람에게 답을 찾기 전에 먼저 예수님께 나아가 마음을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 예배에서도 우리의 참된 피난처 되시는 예수님 앞에 함께 나아가, 회복과 평안을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