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보산 비스가 산꼭대기에 서서 강 건너 약속의 땅을 바라보지만, 끝내 그 땅을 밟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강 하나만 건너면 평생 기다려온 가나안 땅인데, 왜 하나님은 그의 발걸음을 거기서 멈추게 하셨을까요? 그 답을 찾아가다 보면, 뜻밖에도 우리 자신의 사명과 인생의 유한함에 대한 질문과 만나게 됩니다. 오늘은 모세 오경의 마지막 장인 신명기 34장을 통해, 사명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강 이편에서 저편을 바라보는 모세
신명기 34장에서 모세는 모압 평지 느보산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 요단강 서쪽, 약속의 땅 가나안과 첫 성읍 여리고를 바라봅니다. 요단강을 기준으로 동쪽은 ‘이쪽’, 서쪽 가나안 땅은 ‘저쪽’이라 불렸습니다. 마치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북에서 강남을 바라보며 마지막 설교를 하는 것과 같은 그림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강 이편에 있고, 다음 세대가 그 강을 건너 저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4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내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눈앞에 약속의 땅을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위대한 지도자의 시대가 여기서 막을 내리는 모습은, 인간적으로 보면 참 서운하고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를 막으셨을까
그 이유는 민수기 13, 14장 가데스바네아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두 명 중 열 명이 “우리는 메뚜기 같고 그들은 거인 같다”며 악평을 쏟아냈고, 백성들은 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 선언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고백한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죽음 역시 이 불신앙의 세대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모세 역시 그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수명과 은혜의 장치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만약 모세가 500년, 천 년을 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새 이론이 옛 이론을 이겨서 과학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옛 이론을 믿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과학이 바뀐다”고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500년을 살았다면 양자역학의 시대는 지금처럼 빨리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명이 수백, 수천 년이 된다면 우리는 더 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완고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위대한 모세의 역사마저도 느보산 꼭대기에서 멈추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유한한 수명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은혜의 장치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이 땅의 끝이 전부가 아닌, 영원한 천국을 향한 소망이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마침내 건너가야 할 천국의 예표였습니다.
왜 하필 여호수아였을까
출애굽기 33장 11절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눈 뒤 진으로 돌아갈 때도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회막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갈망했던 여호수아의 손을 들어 다음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경험이 쌓인다고 저절로 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가 지혜를 얻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신명기 34장 5절에서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9절은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고 말합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여호수아를 통해 계속 이어졌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그리고 우리의 차례
모세, 여호수아, 그다음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의 차례입니다. 한 세대는 지나가고 또 한 세대가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오래 살지 못한다고, 나의 시대가 저물어 간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면 건너가고, 그 자리에서 멈추라 하시면 멈추면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몫을 감당하고, 역사는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세상의 눈으로는 미완성처럼 보이는 그 마침이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거룩하고 온전한 완성이었습니다. 허무한 세상의 역사 대신 영원한 생명을 끝까지 붙잡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소망을 품고, 이번 주에도 함께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의 이야기를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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